토씨90 ⌜최병화 동화 모음집⌟ ⌜최병화 동화 모음집⌟ 저자 : 최병화 진수는 자기도 알지 못하게 서점 앞에 와 섰으나 이제는 자기를 위하는 즐거움도 그 마음속에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직 조금 아까 본 동무의 슬픈 행동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책 살 것도 잊어버리고 그대로 경효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경효는 벌써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경효를 찾아보고 타일러 볼까.’ 하고 간신히 결심을 하고 발을 떼어놓으려 할 때 “옳지! 너로구나. 지금 서점 앞에 와 섰던 아이가.” “네! 그렇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는 게 무엇이냐, 나는 벌써 다 알고 있는데. 남의 가게에서 책을 훔친 놈. 어서 책을 내놓아라.” “저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무어 아니야 내가 속을 줄 아니? .. 2022. 9. 5. ⌜십이월 십이일⌟ ⌜십이월 십이일⌟ 저자 : 이상 아내와 아이가 죽었다. 지독한 가난. X는 고향을 등지고 어머니와 함께 이국으로 떠났다. 결혼한 동생 T는 어머니를 모실 여력도 의지도 없으니. 어머니는 얼마 후 돌아가시고 만다. 타향살이를 하며 갖은 고초를 겪은 후 한 여관의 주인과 친구로 지내게 된다. 그는 여관 외에 처처에 상당한 건물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된 여관 주인에게 재산을 넘겨 받은 X는 마침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예상 못한 세상에서 부질없이 살아가는 동안에 어느덧 나라는 사람은 구태여 이 대칭점을 구하지 아니하고도 세상일을 대할 수 있는 가련한 ‘비틀어진’ 인간성의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인간을 바라볼 때에 일상에 그 이면을 보고 그러므로 말미 암아.. 2022. 9. 5. ⌜허민 산문 모음집⌟ ⌜허민 산문 모음집⌟ 저자 : 허민 모자 쓴 이마에 땀이 어리우고 등 끝이 다근하여졌다. 눈이 부시다. 모든 것이 행맑다. 실버들 가지는 출렁거리고 처녀의 치맛단이 팔팔거린다. 오! 봄이다. 개고리야. 논 둔벙에 알을 쓸지 않으려느냐? 숲 속의 솔개야. 하늘에 무늬 놓은 구름을 너의 억센 날개로 쓰다듬지 않으려느냐? 옛날의 동무야. 단장 밑에서 각시풀을 뜯어 소꼽질하던 기억을 지금 어디서 하려느냐? 봄은 앞들 백양목과 대숲에다 회초리 하나와 마디 하나 더 늘여 주려 왔고 앞 산허리 공동묘지에 무덤을 여러 낱 보태러 왔다. 지금 온 봄인들 희열과 그 그늘인 애적(哀寂)을 함께 가져오지 안 했을 리 없다. 그리하야 희비가 담긴 그림책을 제공하는 것이다. - ‘돌아온 실춘보’ 중에서 - 나의 영록기 - 「구룡.. 2022. 9. 5. ⌜조명희 단편집⌟ ⌜조명희 단편집⌟ 저자 : 조명희 “흉년은 벌써 판단된 흉년이지. 그러나 지금이라도 비만 온다면 아주 건질 수 없게 된 말라 죽은 것 외에는 다소간 깨어날 것도 있을 테니께. 그러한 것은 한 마지기에 단 벼 몇 말을 얻어 먹더라도…….” 고추상투를 하여 가지고 쥘부채를 왼손에 들고 슬쩍슬쩍 부치며 앉았던 반남아 늙은이의 참하게 대답하는 말이다.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벼 말박을 건질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되며 건진다 하더라도 며칠이나 먹게 될 테야 그게.” 여름에는 참외장수, 겨울에는 나무장수로 이름난 중년에 들어보이는 눈끔적이의 말이다. “그리고 저러고 간에 필경에는 다 죽네 죽어.” 눈끔적이와 같은 낫살이 들어보이는 세곱해 상투쟁이의 하는 말이다. “네기를 할……. 그럴 줄 알았더라면 매고 뜯지나.. 2022. 8. 30. 이전 1 2 3 4 5 6 7 8 ··· 2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