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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17

⌜낙동강⌟ ⌜낙동강⌟ 저자 : 조명희 방금 차에서 내린 일행은 배를 기다리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청년회원, 형평사원, 여성동맹원, 소작인조합, 사회운동단체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들은 ㅇㅇ감옥의 미결수로 있다가 병이 위중한 까닭으로 보석 출옥하는 박성운이란 사람을 고대 차에서 받아서 인력거에 실어 가지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과연, 들리는 말과 같이 지독했구먼. 그같이 억대호 같던 사람이 저렇게 될 때야 여간 지독한 형벌을 하였겠니. 에라 이 몹쓸놈들.” 그의 말과 같이, 박성운은 과연 낙동강 어부의 손자요,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고기잡이로 일생을 보내었었고 그의 아버지는 농사꾼으로 일생을 보내었었다. 자기네 무식이 한이 되어 그 아들이나 발전을 시켜 볼 양으로 그리하였던지, 남 하는.. 2021. 10. 30.
⌜구룡산⌟ ⌜구룡산⌟ 저자 : 허민 장자골에는 흉년도 자질다. 칡뿌리 죽실이 없어지면 솔잎을 후리고 송구도 베껴 먹는다. 신선의 음식이니 별천지 음식이니 하는 접장의 말은 기실 죽지 못해 하는 수작이다. 감자 톨이라도 있는 사람은 칠십 호 중에서도 대여섯 집밖에 없다 한다. 이러니 용쏘에 빠지고 덤에서 떨어진 귀신이 허다분하고 세간 다 팔고 만주나 북간도로 떠나는 사람도 있다. 할머니는 잠시 바깥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더니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아무렇거나 줄초상 나겠다. 난 꿈마다 피옷을 입으니 야야 너 보내놓고 그 억심 쓰는 건 어찌 다 말로 해. 그래도 자꾸 가거등 어이 할라고, 글씨 네 죽고 나면 이 살림 어이 할라고.” “어무이는 별생각 다 해서 목숨이 그리 쉬 끊어질까 배요. 몇 십 년 모질스런 살.. 2021. 10. 30.
⌜낙오⌟ ⌜낙오⌟ 저자 : 백신애 “나는 간단다.” 결혼을 앞둔 정희가 곧 동경으로 가겠다고 한다. 결혼도 하지 않는다는 다짐이다. 무엇이든 먼저 하려는 심보인 것 같기도 하고 그저 말뿐이겠거니 싶기도 하지만, 돌아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 이튿날 저녁이었다. 저녁을 마치고 나서 혼인 준비로 모인 친척들이 욱덕이며 신랑의 칭찬을 한다. 신식 결혼식은 어떻다는 둥 하고 안방이 터질것 같게 사람이 모여 앉아 있고 건너방에는 신랑집에서 보낸 물건을 구경하느라고 젊은 여인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삼층장, 옷걸이, 이불장 등에 꽉찬 비단옷을 일일이 들추어 구경을 하는 것이었다. “신랑이 외동아드님이라나요. 그래서 이렇게 혼수도 장하답니다. 새 아씨는 트레머리 하는 까닭에 비녀는 그만두라고 했지만 요사이같이 금비녀 값이 .. 2021. 10. 30.
⌜동정⌟ ⌜동정⌟ 저자 : 강경애 아침마다 냉수 한 컵을 마시고 산보를 하라는 의사의 말을 들은 다음날부터 해란강변 우물에 나가 냉수 한 컵을 먹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물동이를 이고 가지밭이나 수수밭을 지날 때마다 꼭 만나는 여인이 있으나 우리는 모른 체하고 지나가곤 한다. 어느 날 본 그의 얼굴은 퍼렇게 피진 자국이 뚜렷하다. 오늘은 꼭 말을 건네고 싶어졌다. “왜 그 볼이 그리 되셨소?” “날 어떻게 보아요……? 말하자면 부인 같아요 남의 어멈 같아요, 혹은 술집 계집이나 이런 것들 같아요?” 나는 그를 말끄러미 보면서, “글쎄…… 부인이겠지……?” 어딘가 모르게 그의 전체에서 화류계의 냄새가 나는 듯 나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보니 그의 버들잎같이 곱게 지은 눈썹이 새삼스럽게 내 눈에 거치었습니.. 2021.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