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편집3

⌜조명희 단편집⌟ ⌜조명희 단편집⌟ 저자 : 조명희 “흉년은 벌써 판단된 흉년이지. 그러나 지금이라도 비만 온다면 아주 건질 수 없게 된 말라 죽은 것 외에는 다소간 깨어날 것도 있을 테니께. 그러한 것은 한 마지기에 단 벼 몇 말을 얻어 먹더라도…….” 고추상투를 하여 가지고 쥘부채를 왼손에 들고 슬쩍슬쩍 부치며 앉았던 반남아 늙은이의 참하게 대답하는 말이다.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벼 말박을 건질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되며 건진다 하더라도 며칠이나 먹게 될 테야 그게.” 여름에는 참외장수, 겨울에는 나무장수로 이름난 중년에 들어보이는 눈끔적이의 말이다. “그리고 저러고 간에 필경에는 다 죽네 죽어.” 눈끔적이와 같은 낫살이 들어보이는 세곱해 상투쟁이의 하는 말이다. “네기를 할……. 그럴 줄 알았더라면 매고 뜯지나.. 2022. 8. 30.
⌜백신애 단편집⌟ ⌜백신애 단편집⌟ 저자 : 백신애 “아이그 어머니! 글쎄 그만 주무세요. 정 그렇게 제가 잘못했거든 내일 아침이 또 있지 않아요? 그만 주무세요, 네?” 어머니는 홱 돌아 앉아 담배만 자꾸 피우신다. 그 입술은 여전히 노여움에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 잘못했어요. 참 잘못했습니다. 잘못한 것만 야단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 이제부터 그리지 말라고 하셨으면 그만이지! 에로나! 주무세요. 왜 저를 사내자식으로 낳으시지 않으셨어요. 이렇게 잠도 못 주무시고 하실 것이 있습니까?” 억지로 어리광을 피우는 내 눈에는 눈물이 펜 ─ 돌았다. 나는 얼른 닦아 감추려 하였으나 차디찬 널빤지 위에서 끝없이 떨고 있을 오빠의 쓰린 생각이 문득 나며 덩달아 솟아오르는 눈물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 참 우스워 죽을 뻔.. 2022. 8. 30.
⌜강경애 단편집⌟ ⌜강경애 단편집⌟ 저자 : 강경애 “글쎄 살지도 못할 것이 왜 태어나서 어미만 죽을 경을 치게 하겄니. 이제 가보니 큰년네 아기는 죽었더구나. 잘 되기는 했더라만…… 에그 불쌍하지. 얼마나 밭고랑을 타고 헤매이었는지, 아기 머리는 고냥 흙투성이라더구나. 그게 살면 또 병신이나 되지 뭘 하겄니. 눈에 귀에 흙이 잔뜩 들었더라니. 아이구 죽기를 잘했지, 잘했지!?” 어머니는 흥분이 되어 이렇게 중얼거린다. 칠성이도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크게 쉬었다. 그리고 자신도 어려서 죽었더라면 이 모양은 되지 않았을 것을 하였다. “사는게 뭔지, 큰년네 어머니는 내일 또 김매러 가겠다더구나. 하루쯤 쉬야 할 텐데, 이게 이게 어느 때냐. 그럴 처지가 되어야지. 없는 놈에게 글쎄 자식이 뭐냐. 웬 자식이냐?” - ‘지하촌.. 2022.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