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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17

⌜저기압⌟ ⌜저기압⌟ 저자 : 조명희 권태롭다. 생활난, 직업난이라는 공포 속에서도 권태 또 권태다. 편집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휘 돌아본다. “에헤 이것 봐! 묵은 진열품들이 벌써 와서 쭉 늘어앉았네. 어제나, 오늘이나, 그저께나, 내일이나 멀미나게 언제나 한 모양으로……. 그런데 이 물건이 제일 꼴찌로 왔구나!” 간부통인 기자 하나가 앞으로 걸어오며 말한다. “오늘도 월급이 안 되겠다네!” 이 땅의 지식계급 ― 외지에 가서 공부깨나 하고 돌아왔다는 소위 총준 자제들 나갈 길은 없다. 의당히 하여야만 할 일은 할 용기도, 힘도 없다. 그것도 자유롭게 사지 하나 움직이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런 가운데 뱃속에서는 쪼로록 소리가 난다. 대가리를 동이고 이런 곳으로 디밀어 들어온다. 그러나 또한 신문사란 것도 자기네들 .. 2021. 10. 30.
⌜해고⌟ ⌜해고⌟ 저자 : 강경애 이 마을 저 마을 전전걸식하다가 박 초시의 눈에 들어 이 집에 들어온 김 서방이었다. 주인의 것이라는 생각은 잊고 몸을 아끼지 않은 덕인지 주인 박 초시는 이 신화면에 둘도 없는 재산가가 되었다. 그런데 그의 아들 면장이 오늘 김 서방을 불러 이야기한다. “그런데 말야, 우리집 형편이 이전 농사를 못하게 되지 않었나. 그러니 자네도 자네 갈 길을 취하여야 하네.” 아무리 박 초시가 없기로서니 나에게 이럴 수는 없다는 억울한 마음이 드는 김 서방이었다. 박 초시 생전에는 사명일마다 닭의 고기를 느긋하도록 먹었건만 주인이 돌아간 후부터는 그렇게 많은 닭을 기르건만도 닭의 발목 하나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저렇게 손님이나 오며는 두 마리 세 마리 아끼지 않고 잡아서 술안주 하고 그나마.. 2021. 10. 30.
⌜채전⌟ ⌜채전⌟ 저자 : 강경애 어렴풋이 잠이 들었던 수방이는 중얼중얼하는 소리에 가만히 정신을 차리고 귀를 기울인다. “…그러니까 일꾼을 줄여야 하지 않겠수?” “그게 뭐 걱정이 되어요? 배추밭 부침이나 해 놓고 나서 내보내지.” 이야기를 듣게 된 수방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이 이야기를 해야 좋은가 안 해야 되나?’ 맹 서방은 감자 담은 광주리와 참대 바구니를 어깨에 올려놓고 손에 들고 벌컥 일어난다. 그래서 왜죽왜죽 집으로 들어간다. 이것을 바라보는 수방이는 가벼운 감격이 사르르 올라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구나 광주리 위로 수북이 담아 올라간 감자를 보니 말로 형용할 수 없이 기뻤다. ‘저것을 내일 장에 갖다가 팔면 돈이 되지. 그 돈은 아부지가 가지구서 쌀두 사 오구 나무도 사 오지. 그리고 우.. 2021. 10. 30.
⌜새 거지⌟ ⌜새 거지⌟ 저자 : 조명희 꽃필 무렵이지만 바람은 제법 쌀쌀하다. 그 바람이 마을 장꾼들의 홑두루마기 자락 속까지 파고든다. “세상의 인심이 참 살얼음판이야. 눈 없으면 코 베어먹을 세상이지……. 이렇게 지악만 해 가다가는 끝판이 어찌 될는고……?” 이른 저녁 거무스름한 형상들이 지껄댄다. “끝판이? 끝도 나는 때가 있겠지……. 창이 나서 뚫어지거나 무슨 요정이 나겠지…….” “어, 저 장돌네 집에 불이 다 켜졌네그려, 인제 왔는가?” “일전에 왔다네……. 우선 그것만 보게. 그 이 주사란 작자가 제 일가붙이인들 대단히 알겠나? 얼마 동안 그 집에 가서 얻어먹고 있다가 필경에는 내밀려서 쫓겨 왔다네, 아무리 병신이요 홀로 된 제 일가 아낙네기로소니 그같이 모으기에만 악독한 놈이 돌아다보겠나?” - 책 .. 2021.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