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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22

⌜날개⌟ ⌜날개⌟ 저자 : 이상 아내는 하루에 두 번 세수를 한다. 나는 하루 한 번도 세수를 하지 않는다. 나는 밤중 세 시나 네 시쯤 해서 변소에 갔다. 달이 밝은 밤에는 한참씩 마당에 우두커니 섰다가 들어오곤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 18 가구의 아무와도 얼굴이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18 가구의 젊은 여인네 얼굴들을 거반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 아내만 못하였다. 열한 시쯤 해서 하는 아내의 첫 번 세수는 좀 간단하다. 그러나 저녁 일곱 시쯤 해서 하는 두 번째 세수는 손이 많이 간다. 아내는 낮에보다도 밤에 더 좋고 깨끗한 옷을 입는다. 그리고 낮에도 외출하고 밤에도 외출하였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 2021. 7. 15.
⌜정현수⌟ ⌜정현수⌟ 저자 : 백신애 그렇다. 명희 씨는 천박하게 입으로나 행동으로서 나를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결코 서로의 맘속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맘 안에는 내라는 이 정현수가 꽉 차여있다. 뻔뻔스럽게 무슨 자랑같이 마음속을 서로 고백할 수 없는 것이야, 세상 놈들은 부끄러워서 어떻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을 하는지. 현수는 팔짱을 끼고 턱 버티고 섰다. ‘이 세상에서 심각한 진리를 탐구하여 마지않는 사람은 오직 명희 씨와 나뿐이다. 그는 옥색을 사랑한다. 무궁무진한 광대무변의 우주의 끝까지 비추는 그 파란색을 사랑한다. 저 망망한 바다의 색도 파랗다. 오! 아니다. 아니다. 그렇다. 참! 현해탄(玄海灘)의 바다라도 왜 왜 물빛이 검을까! “선생님 손님 오셨습니다.”.. 2021. 7. 15.
⌜악부자⌟ ⌜악부자⌟ 저자 : 백신애 경춘은 끼니를 굶는 날이면 그 택부자라는 별명이 더욱 싫었다. “제기 이놈의 턱이 내 살림을 다 잡어 먹은 거야. 이 놈의 턱이 작고 길어지니까 살림은 작고 없어지지.” 없어진 살림이 모조리 그 턱 속에 들어있는 ○것 같이 쥐여짜 도로 내놓게나 할 듯이 사정없이 자기 턱을 주무르고 끝쥐고 쥐여박고 하는 것이었다. “아이구 그러지 마소. 턱이 무슨 죄가 있는기요. 턱이 크면 늦복이 많다두마.” 경춘의 얌전한 마누라는 진정으로 자기 남편을 위로하였다. “흐응 —.” 경춘이도 마누라에게는 둘도 없는 유순한 남편인 터이라 한숨인지 웃음인지 모르는 큰 숨을 내쉬며 뒤로 턱 드러누웠다. “아내의 말과 같이 늙어서야 이 턱의 덕을 보는지 알 수 있나. 세상 만물이 다 한 번 먹으면 한 번은.. 2021. 7. 15.
⌜꺼래이⌟ ⌜꺼래이⌟ 저자 : 백신애 순이 가족은 국경을 넘었다. 농사 지을 땅을 얻으러 러시아에 갔다가 죽은 아버지의 시신을 찾기 위해. 하지만 지금 모두 죄인이 되어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다. 할아버지, 어머니, 순이, 조선 청년 두 사람, 중국 쿨리 한 사람, 도합 여섯 사람이 끌려간다. 끌려 갔습니다. 순이順伊들은 끌려갔습니다. 마치 병든 버러지 떼와도 같이……. 굵은 주먹만큼한 돌맹이를 꼭꼭 짜박은 울퉁불퉁하고도 딱딱한 돌길 위로……. 오랜 감금監禁의 생활에 울고 있느라고 세월이 얼마나 갔는지는 몰랐으나 여러 가지를 미루어 생각하건대 아마도 동짓달 그믐 께나 되는가 합니다. 고국을 떠날 때는 첫가을이여서 세누겹저고리에 엷은 속옷을 입고 왔었으므로 아직까지 그때 그 모양대로이니 나날이 깊어가는 시베리아의 냉혹.. 2021.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