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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20

⌜악부자⌟ ⌜악부자⌟ 저자 : 백신애 경춘은 끼니를 굶는 날이면 그 택부자라는 별명이 더욱 싫었다. “제기 이놈의 턱이 내 살림을 다 잡어 먹은 거야. 이 놈의 턱이 작고 길어지니까 살림은 작고 없어지지.” 없어진 살림이 모조리 그 턱 속에 들어있는 ○것 같이 쥐여짜 도로 내놓게나 할 듯이 사정없이 자기 턱을 주무르고 끝쥐고 쥐여박고 하는 것이었다. “아이구 그러지 마소. 턱이 무슨 죄가 있는기요. 턱이 크면 늦복이 많다두마.” 경춘의 얌전한 마누라는 진정으로 자기 남편을 위로하였다. “흐응 —.” 경춘이도 마누라에게는 둘도 없는 유순한 남편인 터이라 한숨인지 웃음인지 모르는 큰 숨을 내쉬며 뒤로 턱 드러누웠다. “아내의 말과 같이 늙어서야 이 턱의 덕을 보는지 알 수 있나. 세상 만물이 다 한 번 먹으면 한 번은.. 2021. 7. 15.
⌜꺼래이⌟ ⌜꺼래이⌟ 저자 : 백신애 순이 가족은 국경을 넘었다. 농사 지을 땅을 얻으러 러시아에 갔다가 죽은 아버지의 시신을 찾기 위해. 하지만 지금 모두 죄인이 되어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다. 할아버지, 어머니, 순이, 조선 청년 두 사람, 중국 쿨리 한 사람, 도합 여섯 사람이 끌려간다. 끌려 갔습니다. 순이順伊들은 끌려갔습니다. 마치 병든 버러지 떼와도 같이……. 굵은 주먹만큼한 돌맹이를 꼭꼭 짜박은 울퉁불퉁하고도 딱딱한 돌길 위로……. 오랜 감금監禁의 생활에 울고 있느라고 세월이 얼마나 갔는지는 몰랐으나 여러 가지를 미루어 생각하건대 아마도 동짓달 그믐 께나 되는가 합니다. 고국을 떠날 때는 첫가을이여서 세누겹저고리에 엷은 속옷을 입고 왔었으므로 아직까지 그때 그 모양대로이니 나날이 깊어가는 시베리아의 냉혹.. 2021. 7. 15.
⌜광인수기⌟ ⌜광인수기⌟ 저자 : 백신애 그때 말인가요? 내 나이는 열일곱 살, 그이 나이는 열여덟이었지요. 그이가 나에게로 장가들게 되는 것을 아주 기뻐한다고 중매하던 경순이네 할머니가 나에게 말해 주더군요. 그래서 나도 속으로는 은근히 좋아서 어서어서 혼인날이 왔으면 싶어서 몹시도 기다렸지요. 그럭저럭 혼인식도 끝내고 첫날밤이 됐지요. 히히히. 참, 히히히 무척도 부끄럽더라. 문밖에서는 모두들 들여다보느라고 킥킥 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는데 그이는 부끄럽지도 않던지 온갖 재롱을 다 부리겠지요. 하느님, 당신 바로 판단하구료. 그이의 말이 옳습니까? 응? 대답해봐! 암! 암! 그렇지, 그 말이 죄다 틀린 말이지, 틀렸고 말고. 아예 당초에 인간이란 게 공부를 잘못하면 제 행동이 옳든 그르든 간에 아무리 틀린.. 2021. 7. 15.
⌜지하촌⌟ ⌜지하촌⌟ 저자 : 강경애 팔다리가 자유롭지 않은 칠성은 어려운 살림에 도움이 될까 하여 여기저기 구걸을 한다. 그러면서도 옆집 앞 못 보는 큰년에게 마음을 전할 방법을 찾고 있다. 한편 늘 자신에게 보채기만 하는 동생들의 몰골은 꼴도 보기 싫다. “글쎄 살지도 못할 것이 왜 태어나서 어미만 죽을 경을 치게 하겄니. 이제 가보니 큰년네 아기는 죽었더구나. 잘 되기는 했더라만…… 에그 불쌍하지. 얼마나 밭고랑을 타고 헤매이었는지, 아기 머리는 고냥 흙투성이라더구나. 그게 살면 또 병신이나 되지 뭘 하겄니. 눈에 귀에 흙이 잔뜩 들었더라니. 아이구 죽기를 잘했지, 잘했지!?” 어머니는 흥분이 되어 이렇게 중얼거린다. 칠성이도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크게 쉬었다. 그리고 자신도 어려서 죽었더라면 이 모양은 되지.. 2021.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