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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20

⌜마약⌟ ⌜마약⌟ 저자 : 강경애 ‘대체 이 산골로 뭘 하러 들어올까, 왜 그리 보득일 재워 눕히라 성화였나, 이리 멀리 올 줄을 짐작했다면 꼭 업고 올 것을. 또 한 번 물어봐.’ 잠깐 다녀올 데가 있다는 남편을 따라 나섰지만 왠지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날 죽이고 그가 죽으려고 이리 오나.’ 소름이 오싹 끼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잡는다. ‘저기 누구를 찾아가는 게지. 그래서 쌀 말이나 얻어 오려고 날 데리고 오는 게지.’ 한참 후에 이리 오는 신발소리가 있으므로 달려나왔다. “보득이가 깨었어요.” 목이 메어 중얼거리고 보니 뜻밖에 중국인만이 아니냐. 겁결에 발을 세우고, “여보!” 진서방 뒤를 살피니 있으려니 한 남편은 없고 어둠이 충충할 뿐이다. 머리끝이 쭈뼛해진다. 단박에 진서방은 그의 손을 덥석 쥐.. 2021. 8. 20.
⌜검둥이⌟ ⌜검둥이⌟ 저자 : 강경애 교실 문으로 검정개 한 마리가 덥씬 들어와 K선생을 향해 꼬리를 치며 달려온다. K선생은 반가운 마음이 있었으나 그와 동시에 일어나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후회가 밀려온다. ‘아차 내가 또 감정적 행동을 했나 보구나!’ “그만둬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가 뭘 주어서 자꾸만 개가 간다고 저번 교장댁이 좋지 않은 기색을 하던데요.” 아내는 키승키승 보채는 경선이를 떨쳐 업으면서 말하였다. 어깨너머로 보이는 경선의 넓은 이마는 아내의 것을 똑 땄다고 본다. “늘 오니까, 그럴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오늘만은 줘야겠어. 아까 이놈이 교실에 들어왔단 말야. 그런 걸 막 때려줬지.” - 책 속에서 [판매처] 교보문고 | 알라딘 | 예스24 2021. 8. 20.
⌜날개⌟ ⌜날개⌟ 저자 : 이상 아내는 하루에 두 번 세수를 한다. 나는 하루 한 번도 세수를 하지 않는다. 나는 밤중 세 시나 네 시쯤 해서 변소에 갔다. 달이 밝은 밤에는 한참씩 마당에 우두커니 섰다가 들어오곤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 18 가구의 아무와도 얼굴이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18 가구의 젊은 여인네 얼굴들을 거반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 아내만 못하였다. 열한 시쯤 해서 하는 아내의 첫 번 세수는 좀 간단하다. 그러나 저녁 일곱 시쯤 해서 하는 두 번째 세수는 손이 많이 간다. 아내는 낮에보다도 밤에 더 좋고 깨끗한 옷을 입는다. 그리고 낮에도 외출하고 밤에도 외출하였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 2021. 7. 15.
⌜정현수⌟ ⌜정현수⌟ 저자 : 백신애 그렇다. 명희 씨는 천박하게 입으로나 행동으로서 나를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결코 서로의 맘속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맘 안에는 내라는 이 정현수가 꽉 차여있다. 뻔뻔스럽게 무슨 자랑같이 마음속을 서로 고백할 수 없는 것이야, 세상 놈들은 부끄러워서 어떻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을 하는지. 현수는 팔짱을 끼고 턱 버티고 섰다. ‘이 세상에서 심각한 진리를 탐구하여 마지않는 사람은 오직 명희 씨와 나뿐이다. 그는 옥색을 사랑한다. 무궁무진한 광대무변의 우주의 끝까지 비추는 그 파란색을 사랑한다. 저 망망한 바다의 색도 파랗다. 오! 아니다. 아니다. 그렇다. 참! 현해탄(玄海灘)의 바다라도 왜 왜 물빛이 검을까! “선생님 손님 오셨습니다.”.. 2021.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