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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3

⌜허민 산문 모음집⌟ ⌜허민 산문 모음집⌟ 저자 : 허민 모자 쓴 이마에 땀이 어리우고 등 끝이 다근하여졌다. 눈이 부시다. 모든 것이 행맑다. 실버들 가지는 출렁거리고 처녀의 치맛단이 팔팔거린다. 오! 봄이다. 개고리야. 논 둔벙에 알을 쓸지 않으려느냐? 숲 속의 솔개야. 하늘에 무늬 놓은 구름을 너의 억센 날개로 쓰다듬지 않으려느냐? 옛날의 동무야. 단장 밑에서 각시풀을 뜯어 소꼽질하던 기억을 지금 어디서 하려느냐? 봄은 앞들 백양목과 대숲에다 회초리 하나와 마디 하나 더 늘여 주려 왔고 앞 산허리 공동묘지에 무덤을 여러 낱 보태러 왔다. 지금 온 봄인들 희열과 그 그늘인 애적(哀寂)을 함께 가져오지 안 했을 리 없다. 그리하야 희비가 담긴 그림책을 제공하는 것이다. - ‘돌아온 실춘보’ 중에서 - 나의 영록기 - 「구룡.. 2022. 9. 5.
⌜어산금⌟ ⌜어산금⌟ 저자 : 허민 “스님!” “무엇이냐?” “스님 은혜는 태산도 미족하나이다.” “…….” “그만!” “응?” “그만 저를 버려 주십시오 ─ .” “아니 그게 무슨 뜻이냐?” “불법과 인연이 먼 것이외다.” 스승은 똑바로 눈을 주며 “인연?” 하였다가 “…….” 말이 입 안에 돌았을 뿐이요 염주 든 손은 표 나게 떨리었다. 향주로서는 더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따라 구원의 진리에 사느냐? 번뇌를 울 삼고 예술의 모옥(茅屋)에 묻히느냐? 인제는 그의 결향(決向)은 판이한 것이니 정행의 고유보다 곡정의 유언이 중함이었다. - 책 속에서 [판매처] 교보문고 | 알라딘 | 예스24 2022. 1. 11.
⌜구룡산⌟ ⌜구룡산⌟ 저자 : 허민 장자골에는 흉년도 자질다. 칡뿌리 죽실이 없어지면 솔잎을 후리고 송구도 베껴 먹는다. 신선의 음식이니 별천지 음식이니 하는 접장의 말은 기실 죽지 못해 하는 수작이다. 감자 톨이라도 있는 사람은 칠십 호 중에서도 대여섯 집밖에 없다 한다. 이러니 용쏘에 빠지고 덤에서 떨어진 귀신이 허다분하고 세간 다 팔고 만주나 북간도로 떠나는 사람도 있다. 할머니는 잠시 바깥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더니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아무렇거나 줄초상 나겠다. 난 꿈마다 피옷을 입으니 야야 너 보내놓고 그 억심 쓰는 건 어찌 다 말로 해. 그래도 자꾸 가거등 어이 할라고, 글씨 네 죽고 나면 이 살림 어이 할라고.” “어무이는 별생각 다 해서 목숨이 그리 쉬 끊어질까 배요. 몇 십 년 모질스런 살.. 2021.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