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는 이 일들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슈테판 클라인, 유영미 옮김, 포레스트북스
사람은 무엇과 대면할 때 이해하고자 한다.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을 ‘설명’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불확실한 것은 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것은 생각보다 힘이 센데, 그 기운이 임계점을 넘게 되면 이해하지 못해도 이해한 척하게 된다. 역시 나름의 설명을 덧붙이면서.
이해를 위한 중요한 도구 중 하나는 ‘운명’ 혹은 ‘필연’이다. 아마도 ‘그럴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이해가 아니라 바람임을 모른다. ‘이해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스스로의 바람이다.
우연을 운명으로 둔갑시키는 이유는 두려움이다.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내가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 자신과 타인에게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운명이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종종 현실에 맞서지 못하거나 맞서지 않게 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것에 대해 고민하든, 대응하든, 아무것도 하지 않든,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우연을 믿어야 한다. 우연이 운명으로 바뀌는 것을 믿는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만, 때로는 미래를 위해 의욕을 불태울 수 있고 때로는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다.
우연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노력은 우연의 큰 갈래를 틀 수는 있을지 모르나 우연의 지점을 지정할 수는 없다.
정해진 듯 흘러가는 삶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고 싶을 때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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